세상사는 이야기

이태준기념사업회 이사장 취임식

林 山 2016. 6. 3. 18:22

2016년 5월 21일 토요일 오후 4시 진료를 마치고 부랴부랴 철원으로 향했다. '2016 이태준을 찾아가는 철원문학기행'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밤 9시쯤 철원에 도착하니 이미 문학기행은 다 끝나고 이태준기념사업회 안재성 회장과 몇몇 회원들만 남아 있었다.  


동송읍 장흥리 고석정국민관광지의 야경


이태준기념사업회 이사장 취임식


이태준기념사업회 이사장 위촉패


이태준기념사업회 이사장 명함


달빛기행이라는 제목에 맞게 고석정국민관광지의 달밤에 이태준기념사업회 이사장 취임식이 조촐하게 열렸다. 이태준기념사업회 안재성 회장으로부터 이태준기념사업회 이사장 위촉패와 '林 山 임종헌'이라고 새긴 명함을 받았다. 취임식을 마치고 이태준기념사업회 회원들과 달빛기행 뒤풀이를 가졌다. 


이태준 선생은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아버지 장기 이씨 창하(昌夏)와 어머니 순흥 안씨 사이에 1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상허는 부모를 따라 러시아로 건너갔다. 열 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을 잃은 상허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이병기(李秉岐)는 그의 스승이었다. 1933년에는 이효석(李孝石), 김기림(金起林), 정지용(鄭芝溶), 유치진(柳致眞) 등과 함께 친목단체인 구인회(九人會)를 결성하였다. 그는 일제가 물러간 뒤 1946년 월북했다가 거기서 숙청당했다.


이태준 선생은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문학을 통해서 저항했다. 그는 일제에 부역하는 글을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월북한 뒤에도 김일성 우상화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유일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에는 '오몽녀(五夢女, 1925)', '아무일도 없소(1931)', '불우선생(不遇先生, 1932)', '꽃나무는 심어놓고(1933)', '달밤(1933), '손거부(1935)', '가마귀(1936)', '복덕방(福德房, 1937)', '패강냉(浿江冷, 1938)', '농군(農軍, 1939)', '밤길(1940)', '무연( 無緣, 1942)', '돌다리(1943)', '해방전후(解放前後, 1946)' 등의 단편소설이 있다. 리얼리즘 계통의 훌륭한 단편소설을 많이 남긴 상허는 '단편소설의 완성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편소설에는 '사상(思想)의 월야(月夜, 1946)'가 있다. 그외 수필집 '무서록(無序錄, 1944)', 문장론 '문장강화(文章講話, 1946)'도 있다.


이태준기념사업회는 항일민족봉기 97돌인 지난 3월 1일 제1회 이태준문학상에 김성동(金聖東) 작가를 선정한 바 있다. 김성동 작가는 단편 ‘민들레꽃 반지’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민들레꽃 반지’는 한국 현대사에서 금기시되는 남조선로동당(南朝鮮勞動黨, 남로당)과 전쟁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이다. 


이태준기념사업회는 상허의 작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앞으로도 김성동 작가처럼 민족, 민주, 인권을 화두로 문필활동을 하는 작가들을 발굴하여 계속해서 이태준문학상을 수여할 계획이다. 또한 이태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연구 발표회 개최, 문학비 건립, 생가 복원 등에도 힘쓸 것이다. 또, 상허의 고향 강원도 철원으로의 문학기행, 우리 말과 글에 관한 학술대회를 여는 등의 후속 사업도 해나갈 것이다. 


이태준기념사업회 이사장직을 수행함에 있어 공사(公私)를 구분하여 공을 사보다 우선하고, 이로움을 보면 항상 옳음을 생각해서 이태준기념사업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선후배 제현들의 많은 지도편달을 바란다.      


2016.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