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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是是非非) - 김삿갓 시, 김성장 서

林 山 2019. 10. 14. 20:54


시시비비 - 김삿갓 시, 김성장 서


시시비비(是是非非) - 김삿갓


是是非非非是是(시시비비비시시)

是非非是非非是(시비비시비비시)

是非非是是非非(시비비시시비비)

是是非非是是非(시시비비시시비)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도 옳지 않을 때가 있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도 옳지 않을 때가 있다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도 다 그른 것이 아니며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하는 것 이게 시비거리다


조선 최고의 언어 유희와 풍자의 천재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이 '是'와 '非' 두 자만 사용해서 인간 사회의 한 단면을 절묘하게 풍자한 7언절구다. 김병연은 조선 시대의 방랑 시인으로 김삿갓으로도 불린다.


김병연의 가문은 조부 선천부사 김익순이 홍경래(洪景來)의 봉기 때 투항한 것 때문에 역적으로 몰려 멸족을 당했다. 어린 김병연은 노복 김성수(金聖洙)의 도움으로 형 김병하(金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멸문 폐족자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들어가 숨어 살았다. 후일 사면되어 형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 김안근(金安根)은 홧병으로 죽었다.


역적으로 몰려 가문이 멸족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김병연이 과거를 보러 가서 그의 조부 김익순을 지탄하는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시제로 장원급제하였다. 이후 자신의 내력을 어머니에게서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 등으로 김병연은 20세 무렵부터 처자식을 버려둔 채 방랑의 길에 올랐다.


이때부터 그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생각하여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방랑생활 중에 그는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는 한시들을 지었다.


2019.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