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임씨(長興林氏)

장흥임씨(長興林氏) 공조판서공파보(工曹判書公派譜) 발문(跋文) - 임인규(林仁圭)

林 山 2021. 4. 23. 21:49

무릇 족보(族譜)라 함은 성씨(姓氏)의 근원을 밝히고 종족(宗族)을 수합(收合)하여 혈통(血統)을 체계화(體系化)한 것이다. 시조(始祖)로부터 본인에 이르기까지 계계승승(繼繼承承) 이어지는 계통을 밝히고, 조선(祖先)의 명휘(名諱)와 행적(行蹟)과 제파종(諸派宗)의 자손을 수록하여 세세대대(世世代代)로 계승보존(繼承保存)하는 것이니 씨족(氏族)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자필유성(人者必有姓)이요, 성필유족(姓必有族)이니 족필유보(族必有譜)하여야 한다. 족보가 있으므로 줄줄이 이어지는 혈통과 선조의 서차(序次)와 파종(派宗)의 원근(遠近)을 살피고 가까이 함으로써 공경(恭敬)하고 효제(孝悌)하며, 자애(慈愛)하는 도리가 이로 말미암아 생기는 즉 사람이 어찌 수보(修譜)치 않을 수 있겠는가! 물은 만파(萬派)라도 수원(水源)은 하나요, 나무가 천지만엽(千枝萬葉)일지라도 그 뿌리는 하나이다. 

 

시조 일인지신(一人之身)이 나뉘어져 천만손(千萬孫)이 되고, 일세우일세(一世又一世)하여 수백대에 이름이라.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가지와 나무가 무성하고, 수원(水源)이 깊은 물은 오래도록 흐르는 이치와 같을진대 착한 업(業)을 쌓은 이후에 그 유풍(遺風)이 천세(千世)에 승련불절(承聯不絶)하는 이치가 또한 반드시 그러하다. 

 

우리 동방의 임씨(林氏)는 당(唐) 한림학사(翰林學士) 휘(諱) 팔급(八及) 시호(諡號) 충절공(忠節公)께서 동도하여(東渡)하여 팽성(彭城) 용주방(龍珠坊, 평택시 팽성읍)에 임하여 잉거(仍居)하였으니 시조(始祖)이시다. 학사공(學士公) 한 분의 몸으로부터 비롯되어 모두 24관(貫)으로 화벌(花閥)을 이루었음은 선령(先靈)의 묵우(默佑, 말없이 도움)하심이로다. 하오나 고려 말 이래 여러 차례 변란(變亂)을 겪으면서 문적(文蹟)이 전하지 아니하여 계대(繼代)나 절목(節目)을 찾기 어려워 족보가 계속되지 못하였다. 그런 까닭에 상계선조(上系先祖)의 휘자(諱字)를 계대(系代)치 못하고 다만 열서(列書)하는 바다. 또한 우리 장흥임씨(長興林氏)도 세은조(世殷祖) 이상의 상계가 분명치 않으니 한스러운 일이다. 

 

우리 종족의 보사(譜事)는 을유보(乙酉譜, 1765년)를 최초로 지금의 장흥보(長興譜)는 충정공계(忠貞公系)에 계통을 잡아 휘 언수조(彦脩祖)를 1세로 계대를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언수조로부터 분조(蕡祖)에 이르기까지 생졸(生卒)이 분명하지 않다. 그런 까닭에 세대간 생졸연대가 맞지 않으니 장흥군(長興君) 휘 분(蕡)은 충정공계에 부합되지 않음이 분명하다. 무리하게 충정공계에 계통을 잡고 있는 오류(誤謬)를 바로잡아 중조(中祖) 장택군(長澤君) 휘 세은(世殷)에 기세(起世)한다. 모름지기 상계를 분별(分別) 적시(摘示)해야 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세은조(世殷祖) 이상의 현조(賢祖)를 원조(遠祖)로 하는 우리 장흥임씨(長興林氏)는 시조 휘 팔급(八及) 현조(賢祖)의 자손으로 면면히 혈통을 이어 득관조(得貫祖) 휘 (蕡) 충정공(忠靖公)에 이르렀음이 지중할(至重)할 따름이다.

 

이에 득관조 장흥군 후손의 소목(昭穆)을 밝혀 후대를 계승함이로다. 우리 장흥임씨(長興林氏)는 휘 분공(蕡公)께서 고려조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천운(天運)이 한양(漢陽, 이씨조선)으로 돌아감에 다른 왕조의 녹(祿)을 먹지 않는다는 의리로 낙향하여 장흥(長興) 억부산(億夫山, 億佛山, 於佛山) 아래 도림촌(桃林村)에 잉거(仍居)하셨음에 세종조(世宗朝)에 그 충절(忠節)을 기려 장흥군(長興君)에 훈봉(勳封)됨으로써 평택(平澤)에서 장흥(長興)으로 분관(分貫)하였다. 세전누대(世傳累代)하여 적선덕업(積善德業)과 문장충의(文章忠義)가 사(史)에 혁혁(赫赫)하고 보(譜)에 명명(明明)하다.   

 

한 줄기 물이 흐름을 이어감에 천파만류(千派萬流)가 합하여 대하(大河)를 이루고, 한 뿌리 나무가 천지만엽(千枝萬葉)으로 뻗어서 거목(巨木)을 이루듯이 천만자손(千萬子孫)이라도 그 근본은 같다. 그러므로 종지(宗枝)의 나누임과 소목세차(昭穆世次)가 100대에 이를지라도 동족의 의(義)는 변할 수 없으니 동족지손(同族之孫)은 백대지친(百代之親)이라 하였다. 

 

족보가 없다면 종지(宗枝)의 소목(昭穆)을 아는 바 없어 선조의 휘적(諱蹟)을 밝힐 수 없고, 종족의 원근(遠近)을 분별할 길이 없어 혈족(血族)이라도 타인처럼 된다면 어찌 숭조육손(崇祖育孫)의 원리와 효제(孝悌), 목족(睦族)하는 미덕을 찾을 길이 있겠는가! 숭조(崇祖)하는 가운데 돈목(敦睦)하게 되고, 돈목하고자 한다면 숭조하지 아니치 못하는 것이니 혈족을 수합(收合)하고 종지(宗枝)를 보육(補育)하고자 한다면 족보밖에 없다. 조선(祖先)을 존숭(尊崇)하고 족친(族親)이 화합하는 것이 위지인륜(爲之人倫)이라 하였다. 오늘에 우리가 힘써 수보(修譜)하는 것은 사람으로써 사람답기 위함이며 후대를 위하여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함이다. 

 

요즘 외래문물의 범람으로 윤리와 도덕이 퇴폐하고 강상(綱常)이 해이해져 전통과 아름다운 풍속이 사라져 가는 세태에 보(譜)의 큰 뜻을 밝히고자 함이라. 어찌 천학박식(淺學薄識)하다 하여 발문(跋文) 쓰는 것을 주저하겠는가!

 

원컨대 장흥제족(長興諸族)은 동근지손(同根之孫)으로 돈목지친(敦睦至親)하여 천백세(千百世)에 보사(譜事)를 면면계승(綿綿繼承)하는 가운데 족보의 대의(大義)에 따라 숭조목족(崇祖睦族)하고 면려학행(勉勵學行)하며 교자육손(敎子育孫)하여 가문이 영원히 부흥하기 바란다. 

 

2008년(戊子) 교정(校正) 24세손 인규(仁圭) 근발(謹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