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임씨(長興林氏)

장흥임씨(長興林氏) 공조판서공파보(工曹判書公派譜) 발문(跋文) - 임희창(林熙昌)

林 山 2021. 4. 25. 19:53

족보(族譜)란 종족(宗族)의 득성(得姓), 득관(得貫)으로부터 종조(宗祖)와 세손(世孫)의 혈통(血統) 관계를 명료하게 밝혀 선조(先祖)의 위대한 유적(遺蹟)을 후손(後孫)의 보전(保全) 계승(繼承)으로 숭조상문(崇祖尙門)하여 종족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정도(正道)을 제공하는 귀중한 책이라 하겠다. 

 

우리 임씨(林氏)는 중국(中國) 은(殷)나라 태사(太師) 비간공(比干公)의 아드님인 주(周)나라 견공(堅公, BC1091~1029)이 득성하여 7~8천만 명이 세계 각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득성조(得姓祖)의 80세손 온공(蘊公)의 현손(玄孫, 손자의 손자)인 팔급공(八及公)이 서기 870년 전후 동도(東渡)하여 우리나라 임씨(林氏)의 도시조(都始祖)가 되었다. 임씨(林氏)는 2000년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762,767명으로 한국의 10대 성씨(姓氏)이다. 

 

장흥관(長興貫)은 서기 1300년경 득관하여 200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9,355명이 전국 시도에 거주하고 있었으니 지금은 약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족보의 발행은 1765년 영호남합보(嶺湖南合譜)인 을유보(乙酉譜)를 시작으로1821년 영호남분보(嶺湖南分譜)인 신사보(辛巳譜), 1875년 호남단보(號南單譜)인 을해보(乙亥譜), 1914년 호남단보인 갑인보(甲寅譜), 1934년 영호남분보인 갑술보(甲戌譜), 1955년 호남단보인 을미보(乙未譜), 1958년 영남단보(嶺南單譜)인 무술보(戊戌譜), 1976년 영호남합보인 병진보(丙辰譜), 1989년 영호남합보인 기사보(己巳譜) 등을 발행하였으나 1세조를 분조(蕡祖), 언수조(彦脩祖), 팔급조(八及祖) 등으로 발행할 때마다 변경한 것은 후손들의 1세조에 대한 사료(史料), 서적(書籍), 비문(碑文) 등의 자료 수집, 고증(考證), 연구, 해석의 미비로 선조에 대한 면목이 없다. 따라서 1세조에 대한 연구 과제가 남아 있다.     

 

2006년 종회총회(宗會總會)에서 족보 발행이 의결되어 족보편찬위원회(族譜編纂委員會)가 구성되었다. 편찬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종친(宗親)들은 이제 12번째 족보 발행은 선조에 관계되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1세조에 관한 과제는 해결될 것이라는 초미(焦眉)의 관심과 희망찬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자료에 관한 분석과 해석이 영남, 호남, 서울, 경기 등 종친들의 거주 지역과 종파(宗派)에 따라 차이가 있어 공조판서공파(工曹判書公派)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1세조 과제를 해결하고 족보를 발행하자는 의견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2007년 언수조(彦脩祖)를 1세조로 하는 정해보(丁亥譜)가 발행되었는데 종친들의 관심과 기대가 얼마나 충족되었는지 의문과 1만여명밖에 되지 않는 장흥관(長興貫) 종친들이 하나의 문제로 종친 모두가 족보 발행에 참여하지 못하였음은 후손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그지없다.

 

정해보 발행에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참여하지 않은 종친들은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관계되는 자료의 수집과 분석, 해석에 따라 세은조(世殷祖)를 1세조로 하는 족보편찬위언회를 구성하고 업무를 추진하여 2008년 13번째로 무자보(戊子譜)를 발행하였다. 무자보를 발행하면서 1세조를 바르게 하였다는 긍지를 가지면서도 족보 발행의 궁극적인 목적 달성과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는지 스스로 몹시 의문을 가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다수결원리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재도 미래에도 다수결원리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많다고 생각한다. 최근 장흥관 종친들의 과제인 1세조 문제를 비롯한 가족(家族), 친족(親族), 인척(姻戚), 민족(民族), 인종(人種) 등 혈연(血緣)과 혈통(血統)을 기반으로 하는 문제일 것이다. 민법(民法)에서는 동성동본혼(同姓同本婚)이 허용되고 호주제(戶主制)가 폐지되었으며, 호적법(戶籍法)이 폐지되고 가족관계의 등록(登錄)에 관한 법률이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국제결혼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고 있음은 긍정적, 부정적 양면이 있지만 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많은 전통적 제도와 문화가 붕괴되고 있는 현실은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의 민족으로서, 또 고유한 성씨를 가진 종족으로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장흥관 종친들은 2007년 정해보, 2008냔 무자보 발행의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혜안으로 종문(宗門)의 많은 과제를 객관적이고 냉철한 이성적 판단으로 합리적 절차에 따라 슬기롭게 해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멀지 않은 장래에 1세조 과제가 해결되어 거주 지역, 종파에 관계없이 모든 종친들이 솔선하여 참여하는 장흥임씨세보(長興林氏世譜)가 발행되고, 종문의 모든 일에 능동적으로 참가하고 상부상조하여 종친의 번성과 종문의 번창으로 영구히 숭조상문할 있을 것을 감히 확신한다. 

 

서기 2008(무자)년 12월 3일 

장흥임씨 공조판서공파보 편찬위원 세은후(世殷後) 23세손 희창(熙昌) 근지(謹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