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부녀자가 예복에 갖추어 머리에 쓰던 관(冠)인 족두리라는 것이 있다. 족두리는 검은 비단으로 만들며, 위는 대략 여섯 모가 지고 아래는 둥글다. 옛날에는 족두리를 족도리라고 했다. 그 족두리와 아주 비슷한 꽃이 피는 식물이 있다. 바로 족도리풀이다. 족두리풀이라고도 하는데, 표준 명칭은 족도리풀이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정)에는 족도리풀에 대해 학명과 개화기, 결실기, 종자의 크기 등만 간단하게 나와 있다.
족도리풀 뿌리의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맵다. 그래서, 풍한사(風寒邪)로 인한 감기(感氣)나 비염(鼻炎)으로 코가 막혀 답답할 때, 그 뿌리를 코 안에 집어넣으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족도리풀 뿌리는 실제로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감기나 비염, 수족냉증(手足冷症) 등의 치료에 자주 사용하는 아주 고마운 한약재이기도 하다.
족도리풀은 쥐방울덩굴목 쥐방울덩굴과 족도리풀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아사룸 지볼디 미쿠엘(Asarum sieboldii Miq.)이다. 영어명은 와일드 진저(wild ginger) 또는 애서러배커(asarabacca), 헤이즐워트(hazelwort)이다. 중국명은 시신(细辛) 또는 샤오신(少辛), 신(莘)이다. 일어명은 우스바사이신(うすばさいしん, 薄葉細辛)이다. 족도리풀을 조리풀, 족도리, 족두리라고도 한다. 꽃말은 '모녀의 정'이다.
족도리풀의 원산지는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이다. 시베리아 서부에서 중부 유럽에 이르는 지역에도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전국 산지의 나무그늘에서 자란다.
족도리풀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경기도 포천에 예쁜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꽃처럼 아름다워서 꽃아가씨라고 불렸다. 어느 말 소녀는 궁녀로 뽑혀 궁궐로 끌려갔다. 궁궐에서 살던 소녀는 중국에 공녀로 바쳐졌다. 소녀는 중국 땅에서 들판에 자라는 잡초처럼 살다가 죽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소녀의 어머니도 죽었다. 모녀가 죽은 뒤 소녀의 집 뒷마당에는 여자가 시집갈 때 쓰는 족두리처럼 생긴 꽃이 피어났다.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꽃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었다. 그 꽃은 소녀의 한이 맺힌 꽃이라 여겨졌다. 이후 사람들은 그 풀을 족도리풀이라 불렀다.
족도리풀의 키는 15~20㎝이다. 뿌리는 마디가 많고, 육질로 매운 맛이 있으며, 끝에 2개의 잎이 달린다. 잎은 심장형에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뒷면의 맥에 잔털이 흔히 있다. 잎자루는 길고 자줏빛이 돈다.
잎 사이에서 족두리 모양의 검은 자주색 꽃 1개가 핀다. 반구형의 꽃받침은 끝이 3개로 갈라지고, 난형의 꽃덮이조각(花被片)은 끝이 뒤로 말린다. 꽃받침통 입구가 검다. 꽃잎은 없고, 12개의 수술은 2열로 배열되며, 암술은 6개가 모여 달린다. 열매는 장과로 익는다.
족도리풀의 유사종에는 각시족도리풀[Asarum glabrata (C.S.Yook & J.G.Kim) B.U.Oh], 금오족도리풀[Asarum patens (K.Yamaki) B.U.Oh], 만주족도리풀[Asarum heterotropoides var. mandshuricum (Maxim.) Kitag.], 무늬족도리풀[Asarum versicolor (K.Yamaki) Y.N.Lee], 서울족도리풀[Asarum heterotropoides var. seoulense (Nakai) Kitag.], 개족도리풀(Asarum maculatum Nakai), 털족도리풀(Asarum heterotropoides), 자주족도리풀[Asarum koreanum (J.Kim & C.Yook) B.U.Oh & J.K.Kim], 민족도리풀(Asarum sieboldii var. seoulensis), 구족도리풀(Asarum europaeum) 등이 있다.
각시족도리풀은 제주도, 전남 완도 등 남부 섬 해안에서 자란다. 만주족도리풀과 서울족도리풀에 비해 꽃이 작고, 꽃받침열편이 꽃받침통에 가깝게 많이 젖혀져 있다. 또한 잎 뒷면과 잎자루에 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금오족도리풀은 잎맥이 다른 족도리풀에 비해 뚜렷하다. 꽃받침통 입구에 흰 테가 없다. 만주족도리풀의 키는 4~10cm이다. 잎 전체에 털이 있지만 잎자루에는 털이 없으며, 꽃받침조각은 뒤로 살짝 말린다. 무늬족도리풀은 잎이 얇고, 희미한 무늬가 있다. 서울족도리풀은 꽃받침열편의 안쪽에 흰색 또는 옅은 색깔의 무늬가 나타난다. 만주족도리풀과 한데 묶어 털족도리풀로 다루기도 한다. 개족도리풀은 제주도와 남해안에 분포한다. 잎이 두껍고, 선명한 백색 무늬가 있다. 섬족도리풀, 섬세신이라고도 한다. 털족도리풀은 잎 전체와 잎자루에 털이 있고, 꽃받침통 입구에 흰 테가 있다. 자주족도리풀은 잎이 자주색이다. 민족도리풀은 잎이 나기 전에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 꽃이 핀다. 구족도리풀은 시베리아 서부에서부터 중부 유럽 등지까지 넓은 지역에서 자란다. 족두리풀과 형태는 비슷하나 꽃에 통처럼 생긴 부분이 없는 것이 다르다.
전국 한의과대학 본초학 교과서에는 족도리풀과 북세신[北細辛, Asarum heterotropides FR. var. mandshuricum (MAXIM.)], 한성세신(漢城細辛, Asarum sieboldii MIQ. var. seoulense NAKAI)의 뿌리를 본초명 세신(細辛)이라고 한다. 세신은 해표약(解表藥) 중 발산풍한약(發散風寒藥)으로 분류된다. 발산풍한(發散風寒), 통규지통(通竅止痛), 온폐화음(溫肺化飮)의 효능이 있어 풍한감모(風寒感冒), 두통(頭痛), 아통(牙痛), 비색(鼻塞, 코막힘), 비연(鼻淵, 비염), 풍습비통(風濕痺痛, 관절염), 담음해천(痰飮咳喘) 등을 치료한다.
'동의보감' <탕액편 : 풀>에는 세신에 대해 '성질은 따뜻하고[溫] 맛이 몹시 매우며[大辛](쓰고[苦] 맵다[辛]고도 한다) 독이 없다. 풍습으로 저리고 아픈 데 쓰며 속을 따뜻하게 하고 기를 내린다. 후비(喉痺)와 코가 막힌 것을 치료하며 담기를 세게[添] 한다. 두풍(頭風)을 없애고 눈을 밝게 하며 이가 아픈 것을 멎게 하고 담을 삭이며 땀이 나게 한다. ○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데 뿌리는 아주 가늘고 맛이 몹시 매우므로 이름을 세신이라고 한다. 음력 2월, 8월에 뿌리를 캐어 그늘에서 말린 다음 노두를 버리고 쓴다. ○ 단종[單]으로 가루내어 쓰되 2g을 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이 약을 많이 쓰면 숨이 답답하고 막혀서 통하지 않게 되어 죽을 수 있다. 비록 죽기는 하나 아무런 상처도 없다[본초]. ○ 소음경 약이다. 소음두통(한기가 몸속 깊이 서려 양기가 쇠약해지면서 오는 두통)에 잘 듣는데 따두릅을 사약[使]으로 하여 쓴다. 족도리풀은 향기나 맛이 다 약하면서 완만하므로 수소음경에 들어가며 두면풍(頭面風, 머리와 얼굴에서 땀이 많이 나고 바람을 싫어하는 증, 안면신경경련)으로 아픈 것을 치료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약이다[탕액].'고 나와 있다.
2021. 4. 29. 林 山. 2022.5.19. 최종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