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도 이제 마지막 한 주일만 남았다. 너도바람꽃이 필 때가 된 것이다. 3월의 마지막 주말 너도바람꽃을 만나리라는 기대감에 부푼 가슴을 안고 천마산으로 향했다. 나의 봄은 해마다 가야산에서 변산바람꽃, 청계산에서 노루귀, 천마산에서 너도바람꽃을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천마산
천마산 큰골
천마산 큰골
천마산 남서쪽의 큰골을 따라서 숲속으로 들어갔다. 큰골에는 맑은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조차 봄을 만끽하는 듯했다.
청노루귀
청노루귀
청노루귀
큰골 상류에서 오른쪽으로 작은 골짜기로 접어들자 지난해 만났던 바로 그 자리에서 어여쁜 청노루귀가 빵끗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청노루귀는 다른 산보다도 천마산에 많이 자라는 것 같다. 다른 산에서는 청노루귀를 거의 보지 못했다. 아마도 생태환경의 차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노루귀는 이른 봄에 흰색, 분홍색, 청색의 꽃이 핀다. 청색 꽃이 피는 노루귀를 청노루귀라고 한다. 청노루귀라는 종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다. 노루귀라는 이름은 꽃이 피고 나서 나오는 잎의 모양이 마치 노루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고, 학명 Hepatica는 잎이 간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나리아재비과 노루귀속은 전 세계적으로 약 7종이 있다. 한국에는 울릉도 특산인 섬노루귀(H. maxima (Nakai) Nakai)를 포함해서 3종의 노루귀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새끼노루귀(H. insularis Nakai)는 노루귀에 비해 전체적으로 작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루귀는 울릉도산 섬노루귀보다 새끼노루귀와 유전적으로 유연관계가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새끼노루귀는 주로 전남과 제주 등 남부지방에 분포한다.
올괴불나무꽃
청노루귀 자생지 골짜기 어귀에 있는 올괴불나무(Lonicera praeflorens Batalin)에도 흰빛이 도는 연보라색의 작고 예쁜 꽃이 활짝 피었다. 빨간 꽃술이 발레리나의 앙증맞은 발을 꼭 닮았다. 잎보다 먼저 피는 꽃은 너무 작아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자칫 지나치기 쉽다.
올괴불나무는 인동과(Caprifoliaceae)의 낙엽활엽관목(落葉闊葉灌木)으로 올아귀꽃나무, 조소표단자(早咲瓢簞子)라고도 한다. 괴불나무 중에서 꽃이 가장 빨리 핀다고 하여 앞에 접두사 '올'이 붙었다. 키는 1~2m 정도까지 자란다. 한국, 중국 동북지방, 우수리강 등의 지역에 분포한다. 꽃이 예뻐서 관상용으로 정원에 주로 심는다.
올괴불나무의 꽃봉오리와 잎, 줄기, 뿌리를 한약명 금은인동(金銀忍冬)이라고 한다. 꽃봉오리는 초봄, 잎은 봄~여름, 줄기와 뿌리는 수시로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서 쓴다. 민간에서 말라리아, 기관지염, 편도선염, 목감기 등의 치료에 쓴다. 한의사들은 거의 쓰지 않는다.
앉은부처
천마의집 오거리에서 천마산계곡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천마산 앉은부처 보존지구로 향했다. 앉은부처 보존지구에서는 단 한 개체의 앉은부처도 볼 수 없었다. 언제인가부터 앉은부처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젠 완전히 사라졌다. 이른 봄에 가장 먼저 올라오는 앉은부처는 겨우내 굶주렸던 짐승들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앉은부처 보존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멸종위기종 보존지구로 지정만 해놓으면 뭐하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만사가 공염불이다.
천마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을 세 개나 횡단해서 천마산계곡으로 들어갔다. 천마산계곡 상류에서 앉은부처 두 개체를 겨우 만났다. 앉은부처는 꽃이 피었다가 이제 막 지는 중이었다. 앉은부처가 멸종위기종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앉은부처(Symplocarpus renifolius)는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 키 작은 풀이다. 우엉취, 삿부채풀, 삿부채잎이라고도 하고, 금련(金蓮), 수파초(水芭蕉), 지룡(地龍)이라고도 한다. 앉은부처의 자갈색 불염포(佛焰苞) 속의 육수화서(肉穗花序)는 나발(螺髮)이 촘촘히 박혀 있는 불두(佛頭)처럼 생겼다. 그 모습이 마치 동굴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을 하는 부처 같다고 하여 앉은부처, 한자로는 좌선초(坐禪草)라고 한다. 불염포도 승려가 걸치는 가사를 연상케 한다. 불염포 안에 들어 있는 열매 모양의 육수화서는 들쥐가 좋아하는 먹이다. 앉은부처의 육수화서가 사라지고 없다면 거의 겨우내 굶주렸던 들쥐가 따 먹은 것이다.
앉은부처가 언제부터 앉은부채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앉은부채라는 이름의 유래도 전해지는 것이 없다. 다만 꽃이 지고 나서 땅에 붙은 채 돌돌 말려서 나온 잎이 다 펴지면 부채처럼 넓게 펼쳐지는 모양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닌가 한다. 앉은부채보다는 앉은부처로 부르는 것이 맞다고 본다.
앉은부처는 복수초와 함께 스스로 열을 만들어 내고 온도를 조절하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앉은부처나 복수초가 열을 발생시켜 겨우내 쌓인 눈을 녹이면서 땅을 뚫고 올라와 꽃을 피우는 장면은 자못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들이 왜 이런 고생을 하면서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속명 ‘Symplocarpus’는 '결합한다'는 뜻의 그리스어 ‘symploce’와 '열매'를 의미하는‘ carpos’의 합성어로 '씨방이 모여 있는 열매에 붙어 있다'는 뜻이다. 육수화서는 천남성과 식물의 가장 큰 특징이다. 종소명 ‘renifolius’는 콩팥 모양의 잎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앉은부처의 불염포가 콩팥 모양 같기도 하다.
앉은부처의 어린잎은 나물로 먹기도 하는데, 유독성 식물이므로 끓는 물에 데쳐서 며칠 동안 흐르는 물에 담가서 여러 번 잘 우려내야 한다. 유독성분을 제거한 다음 말려서 저장했다가 묵나물로 먹는다. 독성은 잎보다 뿌리에 더 많다.
한의학에서는 앉은부처의 뿌리와 줄기, 잎을 한약명 지용금련(地湧金蓮), 취숭(臭菘)이라고 한다. 취숭은 냄새 나는 배추라는 뜻이다. 뿌리는 여름에 잎이 마른 뒤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서 쓴다. 성질은 차고, 맛은 쓰고 약간 떫다. 주로 소화기 질환을 다스리며, 강심과 거담의 효능도 있다. 진토제나 진정제, 이뇨제로도 쓴다. 악성 피부 종창에도 효험이 있다. 민간에서 경련, 구토, 다뇨증, 담, 대변과다, 신부전, 신장염(급성신장염), 위장염, 유두풍, 자한, 종창, 탄산, 파상풍, 해수 등에 쓴다. 독성이 있으므로 복용할 때 주의한다. 한의사들은 거의 쓰지 않는 한약재다.
애기앉은부채는 잎이 좁고 긴 타원형으로 잎이 나온 뒤에 꽃이 피는 점이 앉은부채와 다르다. 앉은부처가 한국, 일본, 중국의 동북지방,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 자라는데 비해 애기앉은부채는 강원도 북쪽 지방의 고지에서 자란다.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
천마산계곡의 너도바람꽃은 이제 막 지기 시작하고, 꿩의바람꽃은 한창 피어나는 중이었다. 바람꽃 중에서는 변산바람꽃이 가장 먼저 피고, 그 다음이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순으로 피어난다. 꿩의바람꽃이 피고 2주일쯤 뒤에 만주바람꽃이 핀다.
바람꽃을 개화시기 순서로 나열하면 변산바람꽃-너도바람꽃-꿩의바람꽃-만주바람꽃-외대바람꽃-남방바람꽃-나도바람꽃-홀아비바람꽃-세바람꽃-회리바람꽃-바람꽃 순이다. 이 가운데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만주바람꽃과 매화바람꽃은 미나리아재비과에는 속하지만 바람꽃속은 아니다. 대부분의 바람꽃은 봄에 핀다. 가장 늦게 여름에 피는 바람꽃(Wind flower, 風花)이 진짜 바람꽃이다. 바람꽃을 보러 다니다가 알게 된 바람꽃의 개화기이다.
너도바람꽃류(Eranthis, winter aconite)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약 7종이 있다. '새해의 선물(newyear's gift)이라고도 한다. 꽃말은 '사랑의 괴로움, 사랑의 비밀'이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이북 해발 600m 이상의 산지 그늘진 곳에서 자란다.
너도바람꽃(Eranthis stellata Maxim.)은 우리나라 북부 지방과 지리산, 덕유산에 자란다. 꽃은 흰색으로 꽃자루 끝에 한 송이가 이른 봄에 피며, 지름은 약 2㎝ 내외이다. 꽃이 필 때는 꽃자루에 꽃과 자주빛 잎만이 보이며, 꽃이 질 때쯤 연한 녹색으로 변한다. 너도바람꽃을 토규, 절분초라고도 한다.
복수초
복수초
복수초
복수초
복수초
복수초
복수초
복수초(福壽草)는 천마산계곡에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이른 봄 복수초가 산비탈를 온통 노랗게 물들이는 풍경은 천마산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복수초는 앉은부처처럼 두텁게 쌓인 눈도 뚫고 올라와 피는 야생화다. 그래서 운이 좋은 해는 눈밭에 노랑색 호롱불을 켜 놓은 것 같은 설중복수초(雪中福壽草)를 만날 수도 있다.
설중복수초는 4년 전 천마산에서 마지막으로 보았었다. 설중복수초를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 앞에서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앞으로 설중복수초를 다시 보게 될 날이 올 수 있을까?
티베트 산악지대에는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뚫고 올라와 꽃을 피우는 노드바(Nodva)라는 희귀한 약초가 있다. 노드바는 꽃이 필 무렵 스스로 열을 발산하여 3∼4m나 쌓인 눈을 녹이고 올라와 꽃을 피운다. 난로 식물 노드바는 신장병, 방광병, 부종, 복수(腹水) 등의 특효약으로 알려져 있어 티베트 라마승들이 매우 귀하게 여겼다. 한국에도 노드바와 비슷한 식물이 있다. 한국의 노드바 복수초이다.
복수초(Adonis amurensis Regel & Radde)는 한국과 일본, 중국 등 해발 800m 이상의 산지 숲 속 그늘에서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얼음새꽃, 설연화, 원일초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노란 꽃이 황금색 잔처럼 생겼다고 해서 측금잔화(側金盞花)라고 한다. 이른 봄에 노랗게 피는 꽃이 기쁨을 준다고 해서 복수초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름 그대로 복수초는 행복과 장수를 상징한다. 꽃말은 ‘슬픈 추억’이다.
우리나라에는 복수초와 가지복수초(Adonis ramosa Franch.), 제주도에서 자라는 세복수초(Adonis multiflora T. Nishikawa et K. Ito) 등 3분류군이 분포한다. 복수초는 여름이 되면 꿀풀처럼 하고현상(夏枯現象)이 일어나 지상부가 없어지는 식물이다.
일본에는 복수초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오랜 옛날 일본의 안개성에 아름다운 여신 구노가 살고 있었다. 구노의 아버지는 그녀를 토룡신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토룡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구노는 결혼식 날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와 토룡신은 사방으로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구노를 발견하였다. 화가 난 아버지는 구노를 한 포기 풀로 만들어 버렸다. 이듬해 이 풀에서 구노처럼 아름답고 가녀린 노란 꽃이 피어났다. 이 꽃이 바로 복수초였다는 전설이다.
복수초는 뿌리를 포함한 전초를 한약재로 쓴다. 진통(鎭痛), 안신(安神), 강심(强心), 이뇨(利尿)의 효능이 있어 민간에서 창종 등의 치료에 쓴다. 유독성 식물이기 때문에 복용에 주의해야 한다. 한의사들은 거의 쓰지 않는다.
천마산에서 너도바람꽃과 복수초, 앉은부처, 청노루귀, 올괴불나무꽃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봄은 어느덧 내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고 했다. 이른 봄에 만난 꽃 친구들과 내년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고 천마산을 떠나다.
2016.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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