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할 때는 아파트 뒤편 길로 잘 다니지 않는다. 7월 1일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퇴근하면서 왠지 아파트 뒤편 길을 통해서 집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뒷길 초입 화단에서 문득 뜬금없는 꽃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고삼(苦蔘)이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화단에 고삼을 심었을 리는 만무했다. 고삼의 씨앗은 작은 팥의 크기와 같아서 바람에 날아올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아파트 뒤편 숲에 깃들어 사는 새들이 고삼씨를 물고 왔을 가능성이 크다.
고삼꽃을 보니 시골 농촌에 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옛날에는 집에서 기르던 소가 고창증(bloat, 鼓脹症)에 걸리면 고삼의 뿌리를 짓찧어 짜낸 물을 먹이곤 했다. 그러면 터질 것처럼 뻥그렇게 불러오른 배가 신기하게도 가라앉곤 했다. 고삼물은 이름 그대로 엄청나게 쓰다. 그래서 고삼물을 소에게 먹이려면 장정 여럿이 달려들어 고삐를 단단히 잡고 있어야만 했다.
고삼은 장미목 콩과 고삼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Sophora flavescens Aiton이다. 영어명은 쉬러비 소포라(Shrubby sophora) 또는 라이트옐로우-소포라(Lightyellow-sophora)이다. 일어명은 구라라(クララ, 苦参), 중국어명은 쿠셴(苦参)이다. 고삼의 이명에는 너삼, 쓴너삼, 넓은잎너삼, 지삼, 도둑놈의 지팡이, 교괴(驕槐), 녹백(祿白), 뱀의정자나무 등이 있다. 도둑놈의지팡이는 뿌리의 모양이 흉측하게 구부러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삼은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극동부에 분포한다. 고삼의 키는 1m까지 자란다. 땅속 깊히 내린 원주상의 굵은 황갈색 뿌리는 맛이 매우 쓰다. 이 때문에 고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줄기는 곧게 서며 윗부분에서 가지를 치고 일년생가지는 털이 있으나 후에 없어진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엽병이 길고, 수십 개의 소엽으로 이루어진 홀수깃모양겹잎이다. 소엽은 긴 타원형 또는 긴 달걀모양이고 둔두 또는 예두이며 원저이다. 소엽의 양면 또는 뒷면에만 복모가 있으며 가장 자리는 밋밋하다. 꽃은 6~8월에 피고, 색은 연황색 또는 연두색이며, 원줄기 끝과 가지 끝의 총상꽃차례에 많은 꽃이 달린다. 꽃받침은 통같고 겉에 복모가 있으며 끝이 5개로 얕게 갈라지고 겉에 복모가 있다. 기꽃잎은 숟가락형이며 날개꽃잎보다 길다. 수술은 10개로 기부가 이합될 뿐이다. 열매는 협과인데 선형으로 부리가 길고 짧은 대가 있다. 열매는 8~9월에 성숙한다. 종자는 밤갈색으로 둥글다.
고삼의 뿌리(根)를 한약명 고삼(苦蔘), 종자를 고삼실(苦蔘實)이라고 한다. 고삼은 청열약(淸熱藥) 중에서도 청열조습약(淸熱燥濕藥)에 속한다. 고삼의 성질은 차고 독이 없으며, 맛은 매우 쓰다. 고삼은 청열조습, 거풍살충(祛風殺蟲), 이뇨(利尿)의 효능이 있어 열독혈리(熱毒血痢0, 변혈(便血), 황달(黃疸), 적백대하(赤白帶下), 음종음양(陰腫陰痒), 습진(濕疹), 습창(濕瘡), 피부소양(皮膚搔痒), 개선마풍(疥癬麻風), 급성편도선염(急性扁桃腺炎) 등을 치료한다. 질 트리코모나스균에 의하여 발생하는 적충성음도염(滴蟲性陰道炎)에는 즙을 내서 바른다. 고삼실은 눈을 밝게 하고 건위제(健胃劑) 또는 회충구제제로 사용된다. 급성균리(急性菌痢), 변비에 응용할 수 있다.
고삼은 매우 쓰고 찬 약이므로 많은 양을 쓰면 안된다. 약으로 쓸 때는 탕보다는 환제(丸劑)나 산제(散劑)로 하여 사용한다. 신경허약자, 임산부, 간장이나 신장 하약자, 비위 허약자, 습관성 유산자는 한의사의 지도 하에 신중히 사용한다. 고삼은 갈퀴꼭두서니, 인삼과는 함께 처방하지 않는다. 또 고삼 복용 중에는 꼭두서니나 여로, 인삼을 금한다.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고삼의 줄기나 잎을 달여 살충제로 쓰기도 하였으며, 재래식 변소에 넣어 두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여 많이 사용하였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고삼에데 대해 '성질은 차고(寒) 맛은 쓰며(苦) 독이 없다. 열독풍(熱毒風)으로 피부와 살에 헌데가 생기고 적라(赤癩, 문둥병의 일종)로 눈썹이 빠지는 것을 치료한다. 심한 열을 내리고 잠만 자려는 것을 낫게 하며 눈을 밝게 하고 눈물을 멎게 한다. 간담의 기를 보하고 잠복된 열로 생긴 이질과 오줌이 황색이면서 적색인 것을 낫게 한다. 치통(齒痛)과 악창(惡瘡)과 음부에 생긴 익창(嗌瘡)을 낫게 한다. ○ 어느 곳이나 다 있는데 잎은 홰나무잎과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일명 수괴(水槐) 또는 지괴(地槐)라고도 한다. 음력 3월, 8월, 10월에 뿌리를 캐어 햇볕에 말려 쓰는데 달이는 약에 넣어서 쓰지는 않는다(본초). ○ 족소양경으로 들어간다. 맛이 몹시 써서 입에 들어가면 곧 토하므로 위(胃)가 약한 사람은 삼가해서 써야 한다. 찹쌀(糯米) 씻은 물에 하룻밤 담갔다가 6시간 동안 쪄서 햇볕에 말린다. 달이는 약에는 적게 넣어 쓰고 알약을 많이 만들어 먹어야 한다. 헌데를 치료하는 데는 술에 담갔던 것을 쓰고 장풍(腸風)을 치료하는 데는 연기가 날 때까지 닦아서 가루내어 쓴다(입문). ○ 음기(陰氣)를 세게 보한다(단심).'고 나와 있다. '동의보감은 또 고삼실에 대해 '음력 10월에 씨를 받아 홰나무씨 먹는 법대로 먹는다.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늙지 않으며 눈이 밝아지는 것을 경험하였다(본초).'고 설명하고 있다.
2020.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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