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의학 건강 이야기

간암 말기환자 치료기

林 山 2006. 10. 26. 20:00

어느 날 오후 5촌 당숙이 한의원으로 찾아왔다. 한림대학교 부속 강남성심병원으로부터 간암(肝癌) 말기 판정을 받은 진단서를 들고서..... 발급날짜를 보니 2005년 2월 17일로 되어 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잘 드시라는 말만 하더란다. 이미 수술요법이나 화학요법, 방사선요법을 쓸 수 있는 단계가 지나버린 것이다.

병원측으로부터 6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를 받은 당숙은 아직도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했다. 하긴 당숙의 나이는 만 53세로 아직도 앞날이 창창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당숙은 처음에 소화가 잘 안 되고 심한 피로감을 느껴서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그 외에 다른 자각증상은 별로 없었고..... 그러나 혈액검사와 간조직검사 결과 전혀 생각지도 못 했던 간암말기라는 판정이 나온 것이다. 오진이 의심되어 다른 유명 병원에서 재검을 받은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당숙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다.

이럴 때는 한의학을 공부하고 임상을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안타까운 심정이 된다. 치료시기를 놓친 말기암은 양방이든 한방이든 치료가 어렵기 때문이다. 당숙에게는 내가 마지막 희망이었다. 내게서도 아무런 치료방법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당숙은 더할 수 없는 절망감과 두려움 속에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할 것이다. 나는 당숙에게 기적적으로 말기 간암을 치료한 환자의 예를 들어 부디 희망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사람이 단 하루를 살더라도 희망이 없다면 그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암에 걸린 사람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꿔야만 한다. 자신을 암에 걸리게 한 환경과 생활방식을 새롭게 확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직장이나 인간관계, 심지어 가족관계마저 정리하고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들어가 풀뿌리, 나무뿌리를 캐어 먹으면서 짐승처럼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목숨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좋다. 목숨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욕심이나 욕망은 물론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암이나 중풍의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스트레스가 아니던가! 스트레스가 꼭꼭 뭉치고 뭉쳐서 암이 되고, 터지거나 막혀서 중풍이 되는 것이다. 깊은 산속에서 진실로 자연과 동화된 삶을 살다가 보면 말기 암도 기적적으로 치료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살아 있는 날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 보고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숙은 오랫동안 B형 바이러스성 간염(肝炎)을 앓아왔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B형 간염 바이러스(HBV)는 간암의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 가운데 하나다. 어느 역학연구 결과를 보면 B형 간염 바이러스와 간암 사이에는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B형 간염 바이러스의 만성보유자는 비보유자에 비해 간암이 발생할 확률이 94~200배 정도 높으며, 한국의 간암 환자의 약 70% 이상이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B형 간염환자라 하더라도 단기간에 모두 간암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수 년 또는 수십 년에 걸쳐 간세포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상당히 축적되었을 때 비로소 암이 발생한다.

간암은 간경화(肝硬化)와도 큰 연관성이 있다. 간암환자에서 간경화가 동반되는 경우는 80%가 넘고, 간경화 환자에서 간암이 동반되는 경우는 20~40% 정도이다. 즉 간경화가 있는 사람은 간암에 걸릴 가능성이 그만큼 더 크다는 것이다. 특히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한 간경화의 경우에는 간암이 발생할 확률이 더 커진다. 바이러스성 간염으로부터 진행된 간경화에서 간암의 발생이 높은 것은 바이러스가 주원인으로 생각되지만, 간경화 그 자체도 간암을 발생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것은 간경화 환자에게서 간암 발생률이 높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바이러스성 간염에 의한 간암은 간경화로 이행된 후 발생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만성간염 단계나 보균자 상태에서도 발생될 수 있다. 당숙은 B형 바이러스성 간염을 오랫동안 앓다가 간경화로 진행되고, 간경화에서 다시 간암으로 발전한 경우다.

한의학에서 간암은 간적(肝積), 비기(肥氣), 견징, 적취(積聚), 간창(肝脹), 간착(肝著), 벽황(癖黃) 등과 유사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간암 병변의 진행은 그 발전속도가 대단히 빠른 편이다. 초기에는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타난다고 해도 만성간염이나 간경변의 증상들과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구별이 쉽지 않다. 그래서 간암의 구체적인 증상들이 나타나면 이미 말기에 이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암의 가장 중요한 증상은 진행성 간종대(肝腫大)다. 간암환자의 복부를 촉진해보면 간의 표면에 여러 개의 단단한 결절(結節)이나 종괴(腫塊)가 만져진다. 암세포가 문맥이나 간정맥, 하대정맥을 침범하면 암전색(癌栓塞)을 형성하고, 복막을 침범하면 복수(腹水, 간경변에서도 복수는 나타남)가 나타난다. 간암환자는 일반적으로 식욕이 부진하고 복부가 더부룩하면서 답답하며, 몸이 야윈다. 그러다가 암에서 생긴 독성에 반응하게 되면 발열, 오심,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간암말기에 이르면 신체쇠약, 체중감소, 피로감, 무력감, 발열, 복수, 수종(水腫), 황달, 위장관출혈, 혼수 등이 생긴다. 간암에 간경변을 동반하면 수장홍반(手掌紅斑), 지주상혈관종(蜘蛛狀血管腫), 비장종대(脾臟腫大)가 발생하고, 복벽정맥과 식도정맥이 확장된다. 암류(癌瘤)가 파열되면 복강내출혈과 코피가 터질 수 있고, 흑색변을 보며, 심하면 쇼크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간암환자에서 복수와 위장관출혈이 나타나면 생존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

당숙은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원인이 된 간경변을 동반한 말기간암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화가 잘 안 되고 심한 피로감은 느끼지만 아직 복수나 위장관출혈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간은 모름지기 부드러워야 제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간경변은 말 그대로 간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이다. 나는 당숙에게 급만성간염과 간경변을 치료하는 생간건비탕(生肝健脾湯)과 간암을 치료하는 평소단(平消丹), 과루소요탕을 함께 처방해 드렸다. 그와 함께 물 좋고 공기 좋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요양을 하도록 단단히 일러드렸다.

생간건비탕은 인진오령산(茵蔯五笭散)과 가감위령탕(加減胃笭湯)을 합방한 데서 백작약, 육계, 반하를 뺀 처방이다. 이 처방은 비위(脾胃)의 습열(濕熱)을 없애고 이뇨, 건비, 안위(安胃), 이담(利膽)의 효능이 뛰어나 간의 생리기능을 회복케 하여 급만성간염, 간경변증 등 각종 간질환을 치료한다. 평소단은 간암을 예방하거나 또는 간부위의 각종 암류를 두루 치료하는 방제다. 간암을 예방하려면 반년마다 평소단을 3g씩 하루에 두 번이나 1.5g씩 하루에 세 번으로 일주일간 계속해서 복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루소요탕은 간의 표면이 평탄하지 않고 질도 단단한 간종대를 치료하는 기본처방이다. 실제 임상에서는 과루소요탕에 청열해독, 연견화어(軟堅化瘀), 소간산결(疏肝散結), 활혈지통(活血止痛), 이습행기(利濕行氣), 개규축수(開窺逐水)하는 약재를 가감하여 처방을 내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밖에 간암환자에게서 간이 종대되고 질이 단단하여 여러 개의 결절이나 종괴가 만져지면 금갑환(金甲丸)이나 자릉환(子楞丸)과 함께 평소단을 복용시킨다. 간암이 악화되어 협통, 상복부 창통(脹痛)이 나타나면 청금삼갑탕(靑金三甲湯)이나 반수환과 함께 평소단을 쓴다. 간암이 더욱 악화되어 간의 포괴(包塊)가 매우 단단해지면서 황달이 나타나면 인금환(茵金丸)이나 칠두산(七斗散)과 함께 평소단을 써서 치료하고, 병정이 매우 심해져서 복수가 나타나면 이련탕(苡蓮湯)과 함께 평소단을 처방한다.

당숙은 내가 처방해드린 약을 가지고 지리산으로 들어가셨다. 한약을 복용하면서 병이 점차 호전되는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반갑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숙은 병원의 의사가 내린 6개월 시한부를 넘겼다. 그러나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갑자기 대량의 위장관출혈이 있고 나서 간성혼수에 빠지더니 그길로 돌아가셨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인간의 수명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인가 보다.

나는 한의사로서 최선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이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말기간암에 대해서 역부족이었음을 내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간암에 대해서 더 연구하고 공부하여 환자는 물론 후학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비록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당숙이 6개월을 더 살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적잖은 위안이 된다. 6개월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짧은 시간이 될 수도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나는 그 6개월이 당숙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믿는다. 당숙이 부디 좋은 세상에 다시 나시기를 천지신명님께 빌어 본다.


 

2006년 10월 26일

 

자료제공-장수건강마을 충주 임종헌한의원 http://cafe.daum.net/leemsan-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