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려몽전쟁(第七次麗蒙戰爭) 자랄타이군이 고려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최항은 출륙환도와 입조를 이행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려몽간의 관계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고려 민중들은 장기간에 걸친 몽고군의 침공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까닭에 몽고에 대한 적개심이 매우 컸다. 강도에 고립되어 꼼짝도 못하고 .. 세상사는 이야기 2013.12.03
제6차 려몽전쟁(第六次麗蒙戰爭) 몽고 제국은 칭기즈칸이 대외 정복전쟁을 일으킨 이래 헌종 몽케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유럽 일대의 여러 나라들을 정복했다. 수많은 국가들이 멸망했음에도 국체를 유지한 나라는 오직 고려와 남송뿐이었다. 특히 수차례의 정벌에도 고려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한 몽.. 세상사는 이야기 2013.12.03
제5차 려몽전쟁(第五次麗蒙戰爭) 1248년부터 1251년까지 몽고의 섭정 카이미쉬는 사신을 보내 출륙환도와 고려 국왕의 입조 등 양국간의 현안을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조건으로 려몽전쟁의 종식과 관계 개선을 요구하였다. 몽고의 외교 노선이 온건론으로 바뀌자 고려도 성의를 보이는 차원에서 강화도 대안인 승천부.. 세상사는 이야기 2013.12.03
제4차 려몽전쟁(第四次麗蒙戰爭) 1241년(고종 28) 11월 몽고 태종 오고타이가 돌연 사망하자 5년 동안 황제의 자리를 둘러싸고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주치의 아들인 바투(拔都)는 자기 가문이 제위 계승에서 소외된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때 오고타이가 죽자 바투와 오고타이의 장남 귀위크(貴由) 사이에 제위 쟁탈전.. 세상사는 이야기 2013.12.03
제3차 려몽전쟁(第三次麗蒙戰爭) 제2차 려몽전쟁이 종식되자 고려는 동진국과 동맹관계를 맺어 몽고의 재침(再侵)에 대비하려고 하였다. 당시 고려는 남송(南宋)과 금나라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이고 있었다. 고려는 표면적으로는 금나라와 동맹관계였지만 실제적으로는 남송과 협력관계에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세상사는 이야기 2013.12.03
제2차 려몽전쟁(第二次麗蒙戰爭) 몽고 태종 오고타이는 고려를 무력으로 위압하여 복속시킴으로써 조공을 받는 군신관계를 수립하는 선에서 침략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이는 몽고가 금나라를 정복할 때 고려가 배후의 위협세력이 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목적이었다. 강화도(江華島) 고려궁.. 세상사는 이야기 2013.12.03
제1차 려몽전쟁(第一次麗蒙戰爭) 몽고 태종 오고타이는 저고여 살해사건의 책임을 묻는다는 명분으로 1231년(고종 18) 대장군(大將軍) 살리타(撒禮塔, 薩里台)에게 고려를 정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후 몽고는 7차례에 걸쳐 고려에 침입하여 살륙과 약탈을 자행함으로써 고려 민중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 세상사는 이야기 2013.12.03
몽고는 왜 고려를 침략했을까? 몽고는 왜 고려를 침략했을까?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당시 아시아의 국제정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3차에 걸친 려요전쟁(麗遼戰爭)에서의 패전 후유증으로 요(遼)나라는 랴우둥(遼東)에서의 패권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고려가 있는 한 송(宋)나라를 침략할 수 없게 되었다. 요.. 세상사는 이야기 2013.12.03
대몽항쟁 유적지 처인성(處仁城)을 찾아서 나는 충주(忠州)에서 태어나 대학과 군대에 갔을 때를 제외하곤 줄곧 충주에서 살았다. 고향이라서 그런지 나는 평소 충주의 향토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충주는 남한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영남지방과 개경(開京, 개성), 한성(漢城, 서울)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3.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