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 7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7 -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다

임억령은 제자 정언홍, 언식 형제가 과거에 낙방하자 이들을 위로하는 시를 지었다. 정언식은 임억령의 증손녀사위이기도 했으니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쌍정낙제환향영정전벽도송원(雙鄭落第還鄕咏庭前碧桃送遠) 낙제하고 돌아온 정씨 형제를 뜰 앞 벽도나무 앞에서..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7 - 퇴게 이황과 시학 논쟁을 벌이다

1553년(명종 8) 3월 이황이 임억령을 찾아와 서로 시를 주고받았다. 임억령이 먼저 칠언절구 6수를 짓고, 이황은 그의 시에서 차운하였다. 임억령이 먼저 '증경호퇴계(贈景浩退溪)'를 지었다. 운(韻)은 '아(峨)'와 '다(多)'였다. 증경호퇴계(贈景浩退溪) - 경호 퇴계에게 드림 春來江漢濤瀾猛(..

[남도정자기행] 송순의 면앙정을 찾아서 10

소쇄처사 양산보는 '면앙정원운' 1수의 운자 '만(巒), 만(漫), 건(乾), 간(干)', 2수의 운자 '전(前), 연(連), 연(烟), 전(傳)'을 차운하여 '차면앙정운'을 지었다. 양산보는 송순의 고종사촌동생이자 김윤제의 매형이었다. 그러니까 송순과 김윤제는 한 다리 건너 사돈 간이었다. 그런 양산보였으니 송순의 면앙정에 시 한 수 걸어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차면앙정운(次俛仰亭韻)-면앙정제영에서 차운하다(양산보) 崱崱群山混混川(측측군산혼혼천) 큼직큼직한 산들에 출렁대는 시내까지 悠然瞻後忽瞻前(유연첨후홀첨전) 느긋하게 뒤를 보다가 문득 앞도 보나니 田墟曠蕩亭欄斷(전허광탕정난단) 정자 난간은 크고 넓은 들판을 향하고 松逕逶迤屋砌連(송경위이옥체련) 구불구불한 솔숲길로 섬돌 이어졌구나 大野燈張皆我月(..

어릴 적 고향 친구 정선이와 충주호를 돌아보다

2010년 추석 다음날인 9월 23일. 제주도에서 올라온 어릴적 친구 정선이와 충주호를 돌아보기로 했다. 지등산 자락에 자리잡은 충주호 선착장에서 유람선에 올랐다. 지등산 자락에 자리잡은 충주호 선착장 유람선에서 정선이와 함께(왼쪽이 필자) 계명산 자락에 자리잡은 종민동 월악산 충주호를 병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