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프리카에 속하는 나라들은 에리트레아와 지부티,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코모로, 세이셸 등이다. 코모로와 세이셸은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들이다. 동아프리카 국가들 가운데 동북부 지역은 그 모양이 흡사 코뿔소의 뿔을 닮았다고 해서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이라고 부른다.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한 나라들은 에리트리아와 지부티,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4개국이다.
에리트레아 지도
에리트레아 연방(The State of Eritrea)은 에티오피아 고원(Ethiopian Highlands)이 북쪽으로 뻗어나간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에티오피아 고원을 아비시니아 고원(Abyssinian Plat.)이라고도 부른다. 북서쪽으로 수단, 남쪽으로 에티오피아, 지부티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홍해(紅海, Red Sea)의 남쪽 끝자락에 면해 있다. 홍해를 따라 카사르 곶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Bab-el-Mandeb)까지 약 1,000km에 걸쳐 있으며, 홍해의 달라크 군도를 포함하고 있다.
에리트레아는 중앙 주(마에켈 주), 남부 주(데부브 주), 가시바르카 주, 안세바 주, 홍해 북부 주(세미에나위케이바리 주), 홍해 남부 주(데부바위케이바리 주) 등 6개 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는 아스마라(Asmara)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절반 정도인 117,600㎢ 이다. 인구는 2018년 기준 약 597만명이다.
에리트레아 국기
에리트레아의 국기는 1952년부터 쓰인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EPLF, Eritrean People's Liberation Front)의 기를 바탕으로 하여 1993년 5월 24일에 처음 제정되었으며, 1995년 12월 5일에 비율을 수정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위쪽에는 초록색 삼각형이 그려져 있고, 아래쪽에는 파란색 삼각형이 그려져 있다. 초록색 삼각형과 파란색 삼각형 사이에는 빨간색 삼각형이 그려져 있으며, 빨강색 삼각형 안에는 화환에 둘러싸여 있는 올리브 가지 문양이 노란색으로 그려져 있다.
초록색은 비옥한 토지, 파랑색은 바다, 빨강색은 에리트레아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흘린 피를 의미한다. 빨강색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작아지는 것은 에리트레아에서 유혈 참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있다.
에리트레아 수도 아스마라
에티오피아 고원은 해발 약 2,000m의 고원지대로서 서쪽으로 흐르는 강에 의해 둘로 나뉘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긴 지구대 중 하나인 동아프리카 지구대와 맞닿아 있어 서쪽은 비옥하지만 동쪽의 해안에는 메마르고 나무가 없는 사막지대가 분포한다.
미치와 만에 위치한 미치와
동해안의 미치와 만에 위치한 미치와(Massawa)는 연평균기온 30℃, 연평균강우량 200㎜로 세계에서 가장 더운 곳에 속한다. 해안 사막지대를 벗어나면 어업지대가 나오며, 남쪽으로 가면 좀더 건조하고 추운 고지대가 나타난다.
에티오피아 고원
미치와에서 남서쪽으로 65km 떨어진 해발 2,325m의 아스마라는 연평균기온이 17℃, 연평균강수량은 533㎜이다. 코바르 저지대(해저 약 116m)의 북쪽 끝은 다나킬 사막(Danakil Desert)의 일부를 구성하며, 에리트레아 남동부에 걸쳐 있다. 서쪽의 수단으로 이어지는 경사가 완만한 고원에는 아카시아 사바나와 삼림지대가 있다.
홍해
홍해는 이집트의 수에즈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약 2,100km의 거리를 남동쪽으로 뻗은 후 아덴 만과 인도양으로 이어진다. 서쪽은 이집트와 수단, 에리트리아, 에티오피아의 해안과 접하고, 동쪽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의 해안과 접한다. 북단에서는 수심이 얕은 북서쪽의 수에즈 만과 북동쪽의 아카바 만으로 갈라진다.
타카제 강
에리트레아의 양대 강인 가시 강(Gash River)과 타카제 강(Takaze River)은 나일 강의 지류인 앗바라 강(Nahr ⁽Aṭbarah)을 향해 수단으로 흘러간다. 가시 강의 상류인 메레브 강은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에티오피아와 접경을 이루며, 타카제 강 하류는 서부 저지대 접경의 일부를 이룬다. 아파르 분지는 아라비아 판과 아프리카 판, 그리고 동아프리카 지구대 등 세 판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지질학상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에리트레아 최고지대에는 데가 산(3,047m), 암바모시노 산(3,038m), 소이라 산(3,013m) 등 해발 3,000m가 넘는 산들이 솟아 있다.
에리트레아는 4~6세기에 번영한 고대 악숨 제국의 주요 항구가 있던 지역이다. 950년경 에리트레아는 초기 에티오피아 왕국과 연합을 이룬 자치국이었다가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17∼19세기 이 지역 통치권을 놓고 에티오피아, 오스만 제국, 티크라이 왕국, 이집트, 이탈리아 사이에 분쟁이 벌어졌다.
메넬리크 2세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과 함께 동아프리카를 둘러싼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경쟁이 격화되었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의 메넬리크 2세(Menelik II)와 1889년 우치알리 조약을 맺어 홍해의 소유권을 인정받았으며, 이탈리아인들은 1890년 1월 1일 새로 생겨난 식민지에 로마의 마레에리트라이움(Mare Erythraeu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레에리트라이움은 라틴어로 홍해라는 뜻이다. 에리트레아라는 국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기지였던 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6개 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현재의 국경도 이탈리아 식민지 때 확정된 것이다. 1941년부터 에리트레아의 지배권은 이탈리아로부터 영국으로 넘어갔다.
1952년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의 자치연방이 되었다. 처음에 에티오피아의 자치연방을 찬성하던 많은 에리트레아인은 에티오피아가 자치권을 약화시키려 하자 크게 반발했다. 1962년 11월 14일 에티오피아가 에리트레아를 합병하자 이슬람 중심의 에리트레아 해방전선(ELF, Eitrean Liberation Front)이 결성되어 저항운동을 전개했다. 1970년대 중반 ELF의 개혁적인 인사들과 기독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EPLF)과 에리트레아 해방전선-인민해방군(ELF-PLF)을 결성하면서 독립운동단체는 셋으로 분열되었다. 1972∼1974년 ELF와 EPLF 사이에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1977∼1978년, 1985년 ELF의 조직원들이 대거 EPLF에 합류함으로써 ELF의 군사조직은 와해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ELF-PLF도 EPLF로 거의 흡수되었다. EPLF는 이후 에티오피아로부터 에리트레아의 분리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하일레 셀라시에
1974년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의 폐위와 마르크스주의 군사정부의 붕괴, 에티오피아 반란 연합세력이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하는 등의 혼란을 틈타 EPLF는 임시정부를 구성했다. EPLF는 1991년 5월 30년에 걸친 에티오피아와의 해방전쟁에서 승리하여 수도 아스마라를 탈환했다. 에티오피아 반군도 신정부를 수립했다. 에리트레아 임시정부를 구성한 EPLF는 1993년 4월 독립을 묻는 투표를 실시했다. 에리트레아 국민 99.8%의 찬성으로 EPLF는 5월 24일 독립국가 출범을 선포하였다. 에티오피아 신정부는 에리트레아의 독립을 승인했다.
4년 이내에 새 헌법 을 제정해야 하는 국회는 1993년 6월 초대 대통령으로 EPLF의 사무총장인 이사이아스 아프웨르키(Isaias Afwerki, 1945~)를 선출했다. 그해 국제연합에도 가입했다. EPLF는 1994년 유일 합법정당인 민주정의인민전선(PFDJ, People's Front for Democracy and Justice)으로 개편되었다. 1997년 5월 의회가 출범하였으나, 아프웨르키는 다당제 도입을 계속 연기하면서 PFDJ 일당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언론통제 등 권위주의 통치를 하고 있다.
이사이아스 아프웨르키
에리트레아는 1998년 5월부터 2000년 6월까지 에티오피아와의 국경분쟁으로 인한 전쟁을 치렀다. 2000년 12월 유엔의 중재와 알제리 평화협정으로 국경분쟁은 일단락되었다. 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 국경위원회(EEBC, Eritrea-Ethiopia Boundary Commission)가 국경을 확정할 때까지 국제연합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파견단(UNMEE, UN Mission in Ethiopia & Eritrea)이 국경 평화유지 활동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의 국경지대에 폭 25Km의 임시안전지대(TSZ)를 설치하고 양측을 감시했다.
국경분쟁 이후 2003년 3월 EEBC가 양국간 국경의 소도시인 바드메(Badme)를 에리트레아 영토라고 결정하자 에티오피아의 수용불가 입장으로 양국간 국경 획정작업이 중단되었으며, 양국간 대화도 단절되었다. 2005년 10월 국경분쟁의 해결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에티오피아는 TSZ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의 공중정찰을 금지시킨 이후 양국간 군사적 긴장상태가 고조되기도 하였다.
국경도시 바드메
2008년 7월 30일 UNMEE는 에리트레아의 방해로 철수했다. 2009년 12월 2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무기금수 및 여행제한, 자산동결 등을 담은 결의안 1907호를 채택했다. 이는 소말리아 내 알샤바브(Al-Shabab) 등 무장세력을 지원한 혐의가 있는 에리트레아에 대한 제재 조치였다. 2010년 11월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가 국경획정 내용을 준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AU가 제재를 가하지 않자 이에 대한 반발로 아프리카연합(AU) 탈퇴를 선언했다. 에리트레아는 이듬해 1월 AU 복귀를 선언했다.
2011년 12월 5일 유엔 안보리는 소말리아 무장세력에 대한 에리트레아의 지원을 규탄하는 결의안 2023호를 채택했다. 이듬해 3월에는 에티오피아가 반군 지원을 이유로 에리트레아 국경 지역의 군사 기지를 공격했다. 2013년 1월 에리트레아 군부에 의한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2015년 11월 에리트레아 중앙은행은 화폐개혁을 실시하고 신권을 발표했다.
2018년 7월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와 전쟁 상태를 종식하는 내용의 '평화 우호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같은 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의 중재로 아비 아흐메드(Abiy Ahmed) 에티오피아 총리와 아페웨르키 에리트레아 대통령은 에티오피아-에리트리아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이로써 1998년 시작된 양국 간 무력 분쟁은 공식적으로 종식됐다.
에리트레아는 아직도 EPLF 중앙위원회가 구성한 임시 과도정부가 통치를 하고 있다. 에리트레아는 현재 아프웨르키의 강력한 독재정치로 비교적 정국안정을 유지하고는 있다. 그러나 아프웨르키는 PFDJ 일당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다당제 도입을 계속 연기하고 있으며, 2001년 12월 실시하기로 약속했던 국회의원 선거도 무기한 연기하였다. 따라서 국회를 통해 간선으로 선출되는 대통령 선거도 계속 미루어지고 있어 집권층 내부에서도 민주주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에리트레아는 2001년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모든 민영 언론사를 폐쇄하고 다수의 언론인을 체포한 바 있는 언론탄압국이다.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와의 국경분쟁으로 재정수입은 감소하고 군사비 지출이 급증하여 장기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거기다 10만 명에 이르는 수단 국경지대의 난민과 7만5천 명의 에티오피아 추방난민은 에리트레아에 무거운 경제적 부담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2004년 4월 인권상황의 악화, 다당제 미실시 등의 이유로 아프리카성장촉진법(AGOA, Africa Growth Opportunity Act) 수혜대상국에서 에리트레아를 제외시켰다.
에리트레아의 정부형태는 대통령중심제로 1993년 4월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후 구성된 과도정권이 집권하고 있다. 의회는 150석 정원의 단원제 국회를 채택하고 있다. 정당은 PFDJ가 유일한 정당이다. 대통령은 이사이아스 아프웨르가 1993년부터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에리트레아는 언론에 대한 통제, 군대에서 행해지는 강제노동, 전체주의적인 감시통제망으로 인해 서방언론과 인권단체들로부터 '아프리카의 북한'이라 불리기도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2014년 에리트레아를 탈출한 난민수는 전체 인구의 6%에서 10%에 달할것으로 추정된다.
에리트레아에는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다. 인구 구성은 티그리냐족(티그라이족) 50%, 티그레족 및 쿠나마족 40%, 아파르족 4%, 사호족 3%, 기타 3% 순이다. 남부 고원지대에는 티그리냐어를 쓰는 기독교도들이 분포하고 있다. 티그리냐어를 쓰는 티그라이족은 남쪽 국경 티그라이의 에티오피아 지역주민들과 동일한 인종집단으로 대부분 농업에 종사한다. 티그라이족은 오랫동안 에티오피아의 정치와 문화를 지배해왔으며, 티그라이족보다 더 큰 종족으로 전체가 에티오피아에 사는 암하라족과 함께 기독교를 믿는 주요 종족이다.
북부 고원지대와 동부, 서부 구릉지대에는 티그레어를 쓰는 이슬람교도들이 분포하고 있다. 티그레어를 사용하는 이슬람교도들은 대부분 목축민이다. 해안 사막평원에서는 사호어와 아파르어, 서부 평원지대에서는 베자어와 나일 제어를 사용한다. 해안과 수단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아랍어, 아스마라 주변 사람들은 식민지 시대의 영향으로 이탈리아어를 쓰고 있다. 에리트레아의 공용어는 티그리냐어와 아랍어, 영어다. 티그레어는 주요 언어이다. 교육은 주로 아랍어와 영어로 이루어진다. 문맹율은 41%에 달하고, 평균 수명은 52세(남 51세, 여 53세)이다.
종교는 에리트레아 정교가 50%, 무슬림이 50% 정도 차지한다. 개신교도들은 소수이다. 이 나라에서는 오순절교회나 복음주의 교회 신도들이 감금을 당할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종교적 박해가 심하다. 여호와의증인 중 남자 세 명은 1994년부터 계속 박해당하고 고문받으면서 지금까지 감금당하고 있다. 기독교 박해지역의 기독교인들을 지원하는 국제선교단체인 오픈도어(Opendoor)에서도 에리트레아를 기독교 박해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에리트레아의 경제는 목축업과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고원지대에서는 수수나 밀릿, 보리, 테프(곡초), 옥수수, 밀 등이 재배된다. 염소와 양, 소 등은 대부분 저지대에서 사육된다. 약간의 어업이 홍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스마라에 기반을 둔 공업은 주로 식료품이나 직물, 가죽제품 산업과 관련 있다. 소금은 코바르 저지대에서 산출되어 미치와나 아세브(Aseb)에서 가공된다.
아세브 항
아스마라와 아세브에는 공항이 있으며, 수단과 에티오피아와는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미치와는 에리트레아의 주요 항구이며, 아세브는 에티오피아행 화물을 옮겨 싣는 항구이다. 수출품은 소금, 동물 가죽, 시멘트, 아라비아 고무 등이다.
한국과 에리트레아는 1993년 5월 24일 수교하였으며, 그동안 주에티오피아 한국대사가 에리트레아 대사를 겸하여 오다가 2004년 6월부터 관할 공관을 주케냐 대사관으로 바꿨다. 이후 다시 주수단 대사가 겸임하고 있다. 한국교민은 2018년 12월 기준 1명이 체류하고 있다.
한국은 1993년 에리트레아에 난민정착 자금 5만 달러와 차량 2대, 국민투표 지원 자금 2만 달러를 무상원조했다. 또, 1994년에는 어업용구 구입 자금 5만 달러를 무상원조한 바 있다. 2015년 기준 한국은 에리트레아에 주로 자동차, 철강, 축전지를 수출했다. 에리트레아로부터는 주로 동광, 천연 수지 등을 수입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1993년 5월 25일 에리트레아와 수교하였다. 북한은 에티오피아의 멩기스투 정권과 친밀한 외교관계를 유지했기에 에리트레아와는 다소 관계가 소원한 적이 있었다. 북한은 주에티오피아 대사가 에리트레아 대사를 겸임하고 있다.
2020. 2. 9.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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