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어머니와 이별 연습을 하다 3

林 山 2012. 11. 21. 10:24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7시 퇴근 후 어머니가 입원하신 현대요양병원으로 향한다. 가을도 거의 다 지나가고 해도 많이 짧아졌다. 어두워진 거리엔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다. 

 

504호 병실로 들어서니 어머니는 어제처럼 포도당 링거 주사바늘을 꽂은 채 잠들어 계신다. 어머니를 깨우기 싫어 일어나실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오늘 아침에는 아버지가 호박죽을 사 가지고 오고, 점심 때는 세째 아들이 한약을 갖다 놓고 가고, 저녁에는 큰며느리가 와서 어머니의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갔다고 개신교 신자 할머니가 전한다. 또 오늘은 어머니가 옆 할머니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마음도 통하는 법이다.

 

점심 때 세째가 갖다 놓은 한약은 생맥산이다. 생맥산은 원기와 진액, 심기(心氣)를 보강해주고 기혈순환을 잘 되게 하며 땀을 멈추게 하는 효능을 가진 한약이다. 어머니가 너무 마르신데다가 기운도 없고 맥도 없어서 처방한 것이다.

 

간경화로 복수가 차서 2층으로 내려가신 할머니 침상에는 새로운 할머니가 오셨다. 옆 병실에서 옮겨 왔단다. 새로 오신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다.

 

말소리에 어머니가 잠에서 깨셨다. 내가,

 

"엊그제 시골집에서 기다린다던 순옥이는 도대체 누구랍니까?"

 

묻자 어머니는,

 

"명륜이 딸."

 

하신다. 내가,

 

"명륜이 딸은 승윤이와 승혜라니까요."

 

하자 그제서야 어머니는,

 

"난 명륜이 딸이 순옥이인줄 알았다."

 

엊그제는 어머니의 기억에 혼선이 생겼던가 보다. 어쨌든 다시 기억이 되돌아 오셨으니 다행이다. 어머니는 가끔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어머니가 불쌍해서 이만저만 속이 상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식사도 다 잘 하셨고, 한약도 드셨는데, 침 치료는 안 받았단다. 그래서 건측 곡지, 외관, 합곡, 후계, 족삼리, 양릉천, 현종, 삼음교, 해계, 곤륜 등의 혈에 침을 놓고, 환측 팔다리는 지압을 해드렸다. 

 

"시원하세요?"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어머니는 피곤하신지 금방 눈을 스르르 감으신다. 어머니가 잠드신 것을 보고 옆 할머니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병실을 나섰다. 

 

어머니는 병원과 한방병원을 거쳐 요양병원에 와 계신다. 다음은? 요양등급과 장애등급을 받았으니 요양원에 자리가 나면 그리로 옮기게 될 것이다. 그 다음은.....? 마음이 착잡해진다.

 

어머니 다음은 내 차례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을 것이고..... 병이 들면 어머니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되리라. 인생유전.....

 

2012.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