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역사를 찾아서 떠나는 정자 기행 - 관동제일루 삼척 죽서루 7 1553년(명종 8) 8월 사옹원 정(司甕院正)을 지낸 칠봉(七峰) 김희삼(金希參, 1507∼1560)이 삼척부사로 부임했다. 삼척부사로 있으면서 김희삼은 죽서루에 올라 제영시를 지어 읊었다. 운자는 樓(루), 秋(추), 流(류), 愁(수), 鷗(구)다. 竹西樓(죽서루) - 김희삼 萬仞丹崖百尺樓(만인단애백척루) 깎..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8.09.28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6 서하당에는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김성원의 '서하당팔영(棲霞堂八詠)', 정철의 '하당잡영(霞堂雜詠)과 '성산별곡' 편액이 걸려 있다.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편액에는 14수가 판각되어 있다. 식영정 4선 가운데 유일하게 고경명의 시 편액은 걸려 있지 않다.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편액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8.04.16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5 1581년(선조 14) 진사시에는 합격했지만 대과에는 응시하지 않고 노모를 모시며 학문에만 힘쓰던 김성원은 효행으로 제원도찰방(濟原道察訪)을 제수받았으며, 1592년 제1차 조일전쟁(朝日戰爭,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성원은 동복(同福)의 가관(假官)에 이어 동복현감(同福縣監)을 맡아서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8.04.14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4 1568년(선조 1) 3월 9일 김성원의 장인 임억령이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 문암재에서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임억령은 해남 명봉산(鳴鳳山, 지금의 금강산) 중턱 기좌(己坐)에 묻혔다. 고경명과 백광훈은 만시(輓詩)를 지어 스승의 죽음을 애도했다. 유희춘은 해남의 마포 명봉산 근처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8.04.13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1 16세기 중엽 이후 호남 지역의 사림을 중심으로 시가문학(詩歌文學)의 창작 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났는데, 이들을 일러 호남가단(湖南歌壇)이라고 한다. 호남가단은 기촌(企村) 송순(宋純, 1493~1583)의 면앙정(俛仰亭),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의 식영정(息影亭), 소쇄옹(瀟灑翁)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8.04.10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9 - 식영정을 떠나며 식영정에는 '息影亭(식영정)' 편액을 중심으로 임억령의 '식영정기'와 '식영정제영', 김성원의 '식영정십팔영', 고경명의 '식영정이십영', 정철의 '식영정잡영' 등이 걸려 있다. 용계(龍溪) 민덕봉(閔德鳳, 1519∼1573)의 한시 '차(次)', 정철의 4대손 정호)의 '식영정중수기', 정철의 5대손 정민..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23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8 - 식영정 3선 김성원, 고경명, 정철도 세상을 떠나다 1572년 임억령의 외손녀사위 훈도(訓導) 정언식은 제주목사(濟州牧使) 소흡(蘇潝), 감목(監牧) 이천(李薦)과 함께 제주에서 '석천집(石川集)' 4책 7권을 목판(木板)으로 간행했다. 이 목판본은 전라감사 백담(栢潭) 구봉영(具鳳齡)이 가지고 있다가 이황의 제자인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22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7 -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다 임억령은 제자 정언홍, 언식 형제가 과거에 낙방하자 이들을 위로하는 시를 지었다. 정언식은 임억령의 증손녀사위이기도 했으니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쌍정낙제환향영정전벽도송원(雙鄭落第還鄕咏庭前碧桃送遠) 낙제하고 돌아온 정씨 형제를 뜰 앞 벽도나무 앞에서..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21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6 - 스승 육봉 박우의 묘갈명을 쓰다 1565년(명종 19) 4월 6일 을사사화를 일으켜 정적을 제거한 뒤 권력을 장악했던 주인공 중종비 문정왕후 윤씨가 세상을 떠났다. 9월 18일에는 외척인 정언홍, 언식 형제가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어 백광훈이 찾아와 시를 주고받았다. 그는 임억령의 종매(從妹) 손서(孫壻)이기도 했..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18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5 - 백성을 도탄에 빠트린 정치 현실을 비판하다 임억령은 만년에 식영정에 머물며 성산과 그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더불어 계산풍류(溪山風流)를 즐기면서 보냈다.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의 사화를 통해서 그는 경세제민의 실천의지가 강할수록 또 유가적 대의명분을 소리높여 외칠수록 큰 시련이 닥쳐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16